아프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서재 2015/07/01 01:45 by 돌베개
사춘기 시절 좋아했던 여학생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등하교길에 버스에서 종종 보곤 했다.  난 그만 그 여학생을 내 마음 속에 가득 채워 두었다.
만해 한용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의 "날카로운 첫 키스" 와 비교가 될 만큼 첫 눈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 여학생이 멀리서 나에게로 가까이 오게 되면 얼굴이 서서히 홍시처럼  붉어지고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교복을 입은 것과 명찰 색깔을 보니 나보다 한 살 많은 것이 분명했다. 난 그녀에게 멋져보이고 싶었다. 머리는 스포츠머리임에도 무스를 엄청 발라 하늘로 향하게 했고, 교복도 매일 다림질하여 해군 복처럼 반듯하게 했다. 어느 날 그여학생과 가까이 할 기회가 드디어 왔다. 난 자주 비오지 않은 날씨에도 우산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 날도 휴대하고 갔었다. 정확히 기억하는데 5교시 지나서부터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결국 마지막 수업시간에 비가 쏟아졌다. 다른 아이들은 한 숨 쉬면서 나를 부러운 눈치로 보았다.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30걸음 앞에 그녀가 있었는데 비를 맞으면서 뛰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나온 용기인지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뛰어가 같이 쓰고 말았다. 나의 얼굴을 보자 아는 눈치였다. 다행이었다. 다시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건네고 그 날 이후 미리 시간 약속을 하고 등하교를 같이 했다.결국 내 여자친구가 되었다. 그 날 이후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헸다. 하지만 그녀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이별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난 좋아하는 이성이 더 있었으나 마음은 들키지 않았다.  자랄 수록 더 내성적이 되어 버렸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을 못했다. 이런 내 성격이 싫었다.

이동섭이 쓴 '파리로망스' 를 읽었을 때 약간 놀랐다. 저자 이동섭의 감성이 나와 일치 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이 아니라 100% 일치했다. 어쩜 이리 똑같을 수가 있지?
그리고 옛 생각이 떠올랐다. 비록 헤어지는 이유가 다르더라도 말이다. 저자 이동섭은 일기 식으로 사랑했던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이별하기 까지의 과정을 독자에게 고백한다. 감출 수 있는 비밀이었는데 작가 이동섭은 숨김없이 독자에게 그녀와의 추억을 쏟아낸다. 

저자도 나와 같이 비가 오는 날에 그녀와 가까워 진 경험이 있었다. 어느 소나기가 내리는 날 저녁 그는 그녀를 만났는데 편의점에서 비닐 우산을 같이 썼는데 순간 그녀의 머리의 샴푸 향과 우유 향기가 우산 안으로  쏟아졌고, 어깨를 닿을 듯 말 듯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차를 피하려고  옆으로 비켜 서는 동안 그들은 눈이 마추쳤고 첫 키스를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녀를 잊기 위해 그녀와의 추억이 있던 프랑스 파리로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파리에 도착 후 그는 그녀와의 추억의 장소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추억을 떠오른다. 
세익스피어 서점, 생쉴피스 성당, 카페 르 소르본, 몽마르트르, 튀일리 정원,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세느 강, 뱅센 숲 등 을 다니면서 말이다.

어느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 그림을 한 방향으로 본 노부부를 보면서 그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별이란
함께했던 과거가 아닌,
함께하지 못할 미래의 상실이다.

그녀와 함께 가지 못할 
저 노부부의 시간

우리는 함께 늙어가지 못한다.  

 이동섭,  <파리 로망스>  52p
     
맞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같이 있는 것 만큼 행복한 것은 없겠지. 하지만 사랑은 어느 감정보다도 언제나 휘발성이 빠르다. 그 휘발이 사람에 따라 속도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저 노부부와 같이 인생을 거의 같이 살고 같이 늙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난 이미 한번 결혼을 했고  1년만에 이혼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후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좋아하는 이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결혼에 대해 아니 재혼에 대해 덜컥 겁부터 났었다.

이동섭은 그녀와 만날 당시 결혼 할 약혼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 운명적인 만남부터는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까지 온통 그녀를 위한 삶이었다. 
마침내 약혼자에게 이별 통보를 하고 만다. 책에서 언급했지만 사랑의 질량의 법칙이 적용이 되어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  이동섭 저자도 마찬가지였고, 나도 그랬다. 약자에 속했던 것이었다. 주도권은 늘 그녀가 가졌다. 내가 더 사랑했으니까...그러니 이별에도 더 아팠던 것이었다.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이동섭, < 같은책>  134p

그러니 말이다. 내가 그녀에게 도대체 뭘 잘못해서...무슨 행동, 말을 잘못했기에 이별해야만 하는가? 
저자는 그녀와의 강렬하고 황홀한 연애를 하면서 사랑하는 사이에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 발생이 되었다. 
그것도 우연히....그녀에게 나 아닌 다른 남자가 생긴 것.
책에서 그녀는 저자와 그 남자 사이에 많은 갈등을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미 이동섭 저자는 알고 있었다. 이미 나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니체

이 책을 다 읽고 옛 사랑과의 추억을 떠오려 본다.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사는지 참 궁금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애의 감정이 예전 같지 않아 좀 씁쓸했다. 그리고 이 멜랑꼴리한 기분을 어찌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하다가 박소란의 시처럼 그냥 이 기분을 한동안 유지하기로 했다. 

이대로 잠시 앓기로 했다.
단지 오늘만,
끝으로 보고 싶다 한마디가 몰고 온
이 하루의 고약한 병증

박소란, <통속적 하루>
2015/07/01 01:45 2015/07/01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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